20191216 중앙일보 이 아침에 칼럼
이 남자들의 사랑 법
노기제(전 통관사)
믿는다. 어떻게 믿나? 특별히 바람기가 있는 사람 아니다. 그러나 감시
의 눈초리를 뗄 수가 없다. 세상 돌아가는 상황이, 많은 아내들을 불안하
게 한다. 하루 24시간 함께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
며, 어느 순간 이성의 감정이 확 불 붙어 버릴지 아무도 모른다. 왠지 내 남편은 멋
져 보인다. 모든 여자들이 가슴 설레며 내 남자에게 들이 댈 것 같다.
내 가정, 내 남편, 내 아내, 내 가족을 누가 지켜 주겠나. 최선의 방법은
하늘에 맡기고 편하게 사는 방법은 있다. 말은 쉬운데 그게 잘 안 된다는
하소연이 대세다. 가족이란 이름아래 정해진 이론대로 잘 굴러가면 배우
자를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쏘아 댈 필요는 없다.
서로 눈이 맞아 선택하고 필요에 의해 결혼하고 오랜 세월을 함께 지냈
어도 같지 않은 면이 생긴다. 먹는 습성, 잠버릇, 인생철학, 취미생활, 신
앙에 이르기 까지 달라도 그리 다를 수가 있을 가 싶게 달라진 두 사람의
존재 이유가 흔들린다. 적당히 신경 끄고, 적당히 인정 해 주면서 공존하
려는 의지도 필요하다.
내가 속해 있는 무선협회 회장이, 뜬금없이 날짜를 잡고 고급 식당을
예약하고 남자 회원들의 어 부인들을 초청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중 몇
안 되는 여자회원도 함께 초청 한단다. 송년회가 2 주 앞인데 뭔 소리냐
고 되 물으니 미리들 만나서 얼굴 익히면 송년회 때 편안하게 만날 수 있
지 않겠냐고 소근 댄다.
내 입장에서 보면, 돈, 시간 낭비라고 단정 했다. 연장자로서 한 소리
하리라 마음먹고 인상을 썼더니 회장님의 소곤댐이 길어진다. 우선 남편
이 밤낮으로 빠져서 무전기에 대고 수다가 늘어진다. 간첩인양 암호를 불
러대며 쏼라대는 꼴이 보기 싫다. 더구나 그들이 모여 송년회를 한다니
참석 할 이유도 없다. 게다가 회장직 수행하면서 돈, 시간, 열정 모두를
쏟아 붓는 통에 그놈의 회장직도 마감하라는 불호령이다.
같은 문제로 속 타는 아내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밥 한 끼에 입 열고, 한
잔 걸치며 마음 열어 불만을 쏟아 낸다. 다 똑같은 문제로 속 끓이며 살았
다. 미워서 눈도 안 맞추고 겉 돌던 부부생활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
었음을 알게 된다. 지긋지긋하게 회장이랍시고 이것저것 도움을 청했던
남편이 새삼 더 멋진 사람이란 것도 깨닫게 된다. 봉사하는 모습이 자랑
스럽다. 까짓것, 한 번 더 회장 마누라 노릇 확실하게 해서 남편을 도와주
리라.
객관적 입장에서 내게 느껴지는 남성회원들의 아내 사랑이 각별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들의 취미생활에 몰두할 수도 있
다. 억지로 아내의 이해를 끌어 낼 필요 없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이런
남편들의 고운 마음 때문에 마음 어수선한 년 말이 유난히 따뜻하게 다가
온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부부들이 이해와 사랑과 존중함으로 가정
을 꾸리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