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생각 한다
노기제 (전 통관사)
짠하다. 직장 생활 하면서 다른 부서에 속한 남자 사원들을 보면 괜시리 마음이 아려오던 기억이 새롭다. 가정의 달이라고 떠들썩한 5월 내내 남자를 생각하며 글줄을 풀어내지 못했다. 이제 아버지날이 다가온다. 하루만이라도 그들의 버거운 심정을 이해 해 주자.
가정을 갖지 않은 시절의 남자는 특별히 생각나지 않는다. 이민이란 용감한 결정을 했던 남자들. 한 가정을 이끌어야 하는 위치의 남자들을 직장에서 보게 되면서 내 가슴에 아픔이 자리하게 됐다.
미국에서의 두 번째 직장이 된 통관회사. CAL ASIA 에서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던 때의 사무실 전경을 돌려본다. 규모가 작지 않은 다국적 이민자들의 집합체였다.
미국태생 일본인 사장. 사장을 보필하는 비서직은 막강한 파워로 직원들을 죄지 우지. 이유 없이 직원들을 떨게 하는 스페인어가 모국어인 여자. 왜소한 체격의 사장을 넉넉히 카버하는 사이즈로 사장의 그림자다.
직책도 희미한 직원들 중 특히 영어 소통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남자들 얘기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여자들은 그 남자들에게 무례하다. 아내가 있고 아이들이 있어 생활전선에서의 입지가 절박하다. 부족한 영어구사 탓에 어렵게 얻은 직장이다. 어떻게 해서든 단단하게 잡고 살아남아야 한다.
비록 그들이 내 민족이 아닌 월남사람, 중국사람 이지만, 날마다의 직장생활에서 상사나 여자 동료들에게 받는 대우가 나로 하여금 남자를 생각하게 한다. 이어져 남편을 아들을 생각한다. 내게 중요한 남자가 밖에서 저런 대우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산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가엾다. 그도 한 가정에서는 우두머리요, 이민 오기 전 자국에선 잘 나가던 직장 상사였을 것이다. 어떤 이들에겐 둘도 없이 소중한 사람임에 어디 함부로 하대할 수 있겠는가.
예민한 감성으로 별것을 다 신경 쓴다고 자신을 탓해본다.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는 내 가정이다. 남편을 아빠를 불쌍히 여기고 돕겠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무엇인가 방법이 생각 날 것이다.
누군 직장생활 안 하나? 여자인 나도 직장생활 하면서 별의별 아니꼬운 일 다 당한다. 수 틀리면 에라 네깟 것들하고 사표도 던진다. 허나 남자는 그 호기를 부리지 못한다. 왜? 가족에게 보여주는 가장의 자존심이다. 고개 들고 당당한 모습을 항상 보여줘야 하는 때문이다.
“당신 힘들면 좀 쉬세요. 내가 일하니까”
들리는 아내의 부드러운 음성에, 직장에서 당한 온갖 수모가 순식간에 날아갈 기회가 잠깐이라도 생긴다면 얼마나 큰 선물이 되겠는가.